지난해 9월23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최고위원들 뒤로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이 보인다. (사진=뉴시스)
정치는 전쟁이 아닙니다. 전쟁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한가한 소리’라는 비난이 뒤따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얻어지는 게 무엇입니까. 불신. 혐오. 증오. 현 정치가 양산한 것들입니다. 진영논리 끝에 대한민국은 두 쪽으로 갈라졌습니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질 않습니다. 여의도에 갇힌 그들은 잘난 국회 몇 석 더 얻는 것에 여전히 집착합니다. 스스로 반성하고 다짐했던 국민과의 약속 또한 금배지 뒤로 숨어버렸습니다.
노무현은 원칙 없는 승리보다 원칙 있는 패배를 말했습니다. 설사 불의일지라도 세상에 맞서지 말라는 부모의 잘못된 가르침이 이어졌던 아픔의 역사. 이를 반복해서는 이 땅에 두 번 다시 정의는 없다는 그의 절규는 국민 가슴을 울렸습니다. 진보진영은 그렇게 연합했고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시민사회는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지역에 의존하지 않는 헌정사 최초의 1당 체제이기도 했습니다.
노무현을 계승하겠다는 민주당이 노무현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냐”는 이재명의 말은, 이기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자기 고백과도 같습니다. 그렇게 이재명은 또 다시 대국민 약속을 내팽겨 쳤습니다.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을 비굴한 부결 읍소로 뒤집은 지 불과 두어 달 만입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턱을 만지며 고심에 빠져 있다. (사진=뉴시스)
더욱 처참한 것은 이재명의 비겁함에 있습니다. 윤석열정부의 폭정을 막기 위해 그 어떤 비난도 감수하겠다는 결의로 찼다면, 진정성을 갖고 국민 설득에 나섰어야 옳습니다. 수족들을 내세워 국민 여론과 당내 기류를 떠보는 얄팍한 침묵을 택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위성정당 방지법에 75명의 의원들이 서명하고 이탄희가 지역구 불출마라는 배수진을 치자, 그제야 속내를 드러냈습니다. 비명계의 공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집단반발 배경에는 분명 당대표 이재명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이재명이 무슨 말을 해도, 민주당이 무슨 약속을 해도 믿기 어렵게 됐습니다. 다당제를 통해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어온 거대 양당의 기득권을 해체하겠다는 다짐도 비정한 정치현실 논리 앞에는 공수표일 뿐입니다. 승자는 패자와의 약속도 깡그리 잊었습니다. 김동연의 처지가 버림받은 안철수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눈앞의 작은 이익에 집착해서는 대의를 좇을 수 없습니다. 정적을 이기기 위해 정적과 같아져서는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없습니다. 신뢰를 잃은 정치가 마주할 토양은 결국 황무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름을 보이고 차이를 말해야 비로소 간격이 보이는 법입니다. 이는 곧 명분입니다. 명분은 변화를 만듭니다. 그것이 정치가 가야 할 길입니다. 노무현을 망각한 민주당의 길을 고집하겠다면, 솔직하게 노무현의 사진만이라도 내리십시오. 이재명 사진만 내거십시오.
편집국장 김기성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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