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아래에 위치한 페노스칸디아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핀란드, 러시아의 콜라반도와 카렐리아 지역을 가리킵니다. 세계 곳곳에서 선사 인류의 바위그림이 발견된 것처럼, 이곳에도 수천 년 전 신석기인들이 남긴 바위그림이 있습니다. 그들은 물가의 돌에 무엇을, 왜, 새겼을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질문을 품은 채 떠난 여정, 러시아 카렐리야의 오네가호수와 비그강, 콜라반도의 카노제로호수에 새겨진 바위그림과 노르웨이 알타 암각화를 향해 가는 시간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사냥 덫인가, 해와 달인가?
샬스키 마을에서 온 일행이 떠나고 다른 러시아 그룹들도 사라졌지만 나는 페리노스곶을 떠날 수 없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고 있으니 곧 기묘한 기호들에 석양이 비칠 것이었다. 암각화는 일출과 일몰 때 가장 잘 보인다. 빛이 중요하다. 하지만 맑은 날 대낮에 빛이 너무 가득하면 제대로 보이지 않고, 흐린 날 빛이 너무 적어도 잘 보이지 않는다. 빛이 시작되고 사라지는 순간을 포착해야 하는데, 새벽에 배 없이 혼자 강을 건너올 수 없으니 일출은 포기하고 해가 좋은 날 일몰을 노려야 했다. 성공 여부는 날씨, 즉 비와 바람에 달려 있다.
샬스키 마을에서 온 일행이 떠나면서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박성현
기묘한 기호란 오네가호수 암각화에서 두 번째로 많은 종류인 원과 동심원 그리고 초승달 모양의 이미지를 말한다. 다양한 원 모양에는 종종 두 개(때로는 세 개)의 선이 뻗어 있는데, 그 선들이 결합돼 곡선의 손잡이 형태를 띤 것도 있다. 수수께끼 같은 이런 형상은 오네가호 암각화의 여러 지점에서 발견되지만 특히 페리노스곶에 많이 있다. 이 특이한 기호들은 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의견이 분분하고 논란이 돼 왔던 그림이다.
오네가 암각화의 최초 발견자들은 이 묘한 형상을 나침반 이미지로 보았고 다른 어떤 이들은 거울 이미지로 간주했다. 초승달 모양에, 또는 원과 동심원에 두 개의 선이 뻗어 나온 것이 어찌 보면 다리 달린 물체 내지 미지의 생물 같기도 하다. 설마 수천 년 전 선사예술가가 비행접시나 외계의 생명체를 만나 그 모습을 재현한 것일까? 바다처럼 파도치는 호숫가 바위에 새겨진 신비로운 형상들은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태양과 달의 상징으로 해석되는 기호들과 그 외 다른 형상들. 페리노스곶. 사진=박성현.
소련 시절 초창기 연구자들의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사냥도구인 덫으로 해석해 신석기 시대의 사냥 방법을 보여준다고 본 견해와, 원을 태양과 달로 보고 뻗어 나온 선을 광선으로 해석한 견해가 그것이다. 전자를 주장한 리넵스키는 페름의 박물관에서 유사한 형태의 덫을 보고 확신을 얻었다. 반면, 후자를 주장한 라도브니카스는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와 북유럽 원주민인 사미족의 북에서 그 근거를 찾았다.
이집트의 태양 상형문자와 사미족 북에 그려진 ‘태양의 고삐’
라브도니카스가 사용한 이집트의 태양숭배의식과 관련된 그림을 보면, 태양은 원과 그 밑에 뻗어 나온 세 개의 점선으로 묘사돼 있다. 오른쪽 그림인 태양을 뜻하는 이집트 상형문자도 원 안에 태양의 핵 같은 점이 찍혀 있고 그 원 아래로 세 개의 실선이 그려져 있다.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기원전 3,100-3,200년에 처음 사용되었으니 약 5,000년 전이다. 그런데 오네가호 암각화의 시작을 보통 6,000년 전(최근 연구에 따르면 6,500-7,000년 전)으로 추정하니까 둘 사이의 간극이 그리 큰 것은 아니다. 흥미롭게도, 이집트 상형문자의 기원에 대한 여러 가설들 중 설득력 있는 견해로 꼽히는 것이 암각화와 관련돼 있다. 나일강 서쪽 사막에 거주하던 선사시대 수렵공동체가 시각적 이미지를 통한 의사소통에 익숙했고 그들이 제작한 암각화에서 상형문자가 유래됐다는 것이다. 다른 그림은 스칸디나비아 남부의 암각화인데, 광선이 있는 원 형태의 물체를 사람이 쥐고 있다. 즉, 이런 모양의 우주 표지가 실제로 컬트 이미지로 손에 들려 사용되었고 광선이 손잡이 형태를 취했음을 알 수 있다. 해와 달을 묘사하고(나아가 별도 묘사) 숭배의식 때 그 이미지들을 사용하는 것은 당시 사람들의 우주에 대한 표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집트의 태양 숭배 의식와 관련된 그림(위)과 스웨덴 보후슬란에 있는 암각화 이미지(아래)인 태양 표식을 쥔 사람. (출처: 라브도니카스, “암각화 이미지의 우주적 표상 요소,” 소비에트 고고학, 1937, № 4, p. 13.)
오네가호 암각화의 원형 기호들과 유사성을 갖는 것으로 라브도니카스가 제시한 또 다른 것은 사미족 샤먼의 북이다. 사미족은 오늘날 노르웨이와 스웨덴 그리고 핀란드의 북부 및 러시아 콜라반도 북쪽에 해당하는 그들의 땅 사프미 지역에 거주해 온 소수민족이다. 역사적으로 외지인들은 이들을 라프(Lapp)라 칭하고 그들이 사는 지역을 라플란드라 불러 왔는데, 여기에는 경멸적인 뜻이 담긴 것으로 여겨져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곁가지 얘기지만 ‘샤먼’이라는 용어는 시베리아 에벤키족의 퉁구스어 ‘사만’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사미족의 무속지도자는 샤먼이 아니라 ‘노아이디’(러시아에서는 ‘노이다’)라는 그들 자신의 명칭을 갖고 있다. 샤먼이라는 용어는 훨씬 나중에 나온 것이지만 샤먼과 같은 역할을 한 존재의 흔적은 중석기 유적지에서도 발견된다.
어쨌든 사미족 무속지도자의 북을 살펴보면, 북의 한가운데에 마름모꼴의 태양 이미지가 있고 여기서 네 개의 선 또는 실이 동서남북으로 뻗어 있다. 사미족을 연구한 러시아 민족지학자 하루진에 의하면, 이는 태양의 힘이 온 땅에 미치는 것을 나타내고 이 네 선 또는 실은 사미어로 ‘태양의 네 고삐’라 불렸다. 중심의 마름모꼴은 태양신인 페이베다. 태양은 마름모 외에 정사각형이나 원 형태로도 그려진다. 동쪽에는 바람의 신과 그의 아내가 있고 북쪽에는 사냥의 신이, 서쪽에는 다산의 신이 있다. 남쪽에는 일요일, 토요일과 금요일이 위치한다. 사냥의 신 위쪽에 엘크가 보이고 바람의 신 위쪽에는 ‘공기를 통해 보내진 불행’이 있다. 남쪽 아래에는 태양을 뜻하는 원이 보이는데 그 원 위에 나무줄기들과 태양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순록이 그려져 있다.
사미족 샤먼(노아이디)의 북. 중앙에 보이는 마름모꼴과 네 방향으로 뻗은 빛줄기는 태양신을 상징한다. 사진=박성현.
결과적으로, 많은 논의 끝에 현재는 대다수의 학자들이 이 기호가 태양과 달을 상징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으며 그 방향으로 연구가 확장돼 왔다. 그러므로 오네가호수의 여러 원들에 달린 ‘다리’는 해와 달의 광선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부적인 해석에서는 차이가 존재하며 여전히 아무도 확실하게 설명하지는 못한다. 사실 약 6,000년 전 오네가호수의 주민이 만들어낸 이 오묘한 그림이 무엇인지, 신석기 예술가가 무슨 이유로 이 알쏭달쏭한 이미지들을 물가 바위에 새긴 것인지 정답을 알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우리에게는 알쏭달쏭하고 기묘하지만, 그들에게는 서로 잘 알고 있는 표식이었을 것이고 쉽게 소통되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우주와 천체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실제의 어떤 물체로 만들어 이 성스러운 장소에서 의례를 지낼 때 도구로 사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떠나고 싶지 않은 마법의 장소
물가의 바위에 그룹지어 있는 이 기호들은 때때로 엘크나 고니 같은 다른 형상들과 같이 나타난다. 이에 대해, 기호가 상징하는 태양과 달의 힘이 함께 있는 동물들(주로 암컷이 묘사된다)의 번식에 관여하고 다산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한 커다란 태양 기호 옆에는 끝이 역삼각형 모양인 긴 막대(또는 지팡이)가 보인다. 이것은 뭘까? 다른 쪽에는 배를 탄 여러 명의 사람들이 일자형으로 단순하게 묘사돼 있다. 역동적인 사냥 장면이 아니라 양식화된 상징적인 그림이다. 태양과 달의 힘, 동물들, 배와 그 배를 탄 사람들이 어우러진 게 역시 이곳은 염원을 담아 의례를 치르던 성소였을 것 같다.
석양에 비친 암각화. 태양과 달의 상징으로 해석되는 기호들과 그 외 다른 형상들. 페리노스곶. 사진=박성현
석양이 정점에 다다르고 있다. 호수 위의 붉은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면서 내뿜는 광선이 물 위에 비친다. 과연 그 자태가 석양빛에 선명히 드러난 바위그림의 수수께끼 같은 부호와 닮아 있다! 나는 넋을 놓고 6,000년 전 사람들이 만든 자연 속 예술품을 바라보았다. 이 기호들이 산에 있었다면, 철썩이는 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기호 옆에 배와 고니가 그려져 있지 않았다면, 결론적으로 이 그림들이 여기 오네가호수의 물과 바람과 석양 속에 놓이지 않았다면, 넋을 놓고 매료당하는 게 덜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던 나는 이날 결국 돌아오지 않는 나를 찾아 나선 안내인 게르만과 조우할 때까지 어둠이 내린 숲속에서 길을 헤매야 했다.
석양에 비친 암각화. 태양의 상징으로 해석되는 기호 옆에 역삼각형 모양이 달린 막대(또는 지팡이) 형상과 엘크가 보인다. 페리노스곶. 사진=박성현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