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장성환 기자] 정부가 교육 예산 일부를 저출산 대응 예산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교육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교육 예산은 교육 환경 개선 등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쓰여야 한다는 겁니다.
저출산 기금·예산 신설해 '아동수당' 등 현금성 지원 확대 논의
5일 교육계에 따르면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출산위)는 최근 '저출산 기금' 또는 '저출산 특별회계 예산'을 신설해 자녀가 있는 가정에 '육아휴직 급여'·'아동수당' 등 현금성 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현재 150만원인 '육아휴직 급여' 상한을 200만원으로 올리고, '아동수당' 지급 연령도 0~7세에서 0~17세로 확대하고자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정부는 해당 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하려면 연간 약 10조9000억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해당 예산을 유·초·중·고 교육에 사용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부금)이나 교육세 일부로 충원하는 방법을 살펴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교부금의 경우 내국세 20.79%와 교육세 일부로 조성돼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배분됩니다. 근래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만큼 교부금 일부를 다른 용도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울러 정부는 연간 세수 규모가 약 5조원인 교육세를 '인구·교육세' 또는 '육아·교육세'로 바꿔 일부를 저출산 예산으로 이용하는 것도 고민하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최근 '저출산 기금' 또는 '저출산 특별회계 예산'을 신설해 자녀가 있는 가정에 현금성 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은 서울 중구 제일병원 신생아실의 모습.(사진 = 뉴시스)
"오히려 교육비를 직접 지원하는 데 사용해야"
교육계는 교육 예산 일부를 저출산 예산으로 사용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항변합니다. 교육 예산에 여유가 있다면 노후 교실 개선과 교실 증축, 학급당 학생 수 감소 등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는 겁니다.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자 직접 지원을 늘린다고 하는데 학부모들의 교육비 지출 부담이 큰 만큼 교육 예산으로 할 것이라면 오히려 교육비를 직접 지원하는 데 사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교육 예산은 학교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용도로 쓰여야 한다"고 의견을 표했습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반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는 전날 진행한 신년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을 받자 "최근 2년간 국가 세수가 많아져 교육 재정이 늘어나다 보니 교육청 재원이 남아돈다는 허구적 이미지가 생겨 여러 부서가 탐을 내 끌어다 쓰고 싶어 하는 것 같다"면서 "올해는 세수 부족으로 급격한 재정 위기를 맞고 있으니 교육 예산을 질 높은 유보 통합 등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교부금 액수는 세수에 따라 큰 차이를 보입니다. 최근 교부금 규모는 지난 2022년 76조450억원, 작년 75조7607억원, 올해 68조8732억원으로 꾸준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변동성이 큰 교부금을 다른 분야에 사용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게 교육계의 설명입니다.
학부모들도 교육 예산은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데 사용돼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윤경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회장은 "우리나라 출산율의 경우 교육 문제라는 한 요인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로 인해 떨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 예산을 저출산 예산으로 활용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교육 예산은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이 아니라 이미 태어난 아이들 문제에 집중해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교육부 관계자는 이번 논의에 대해 "저출산위가 전문가와 정책 간담회를 하면서 나온 내용으로 알고 있으나 아직까지 우리에게 협의를 요청하는 등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교육계는 교육 예산 일부를 저출산 예산으로 사용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학교에서 교사가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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