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의 바위그림)백해의 도시 벨로모르스크의 친절
(백야의 땅, 박성현의 바위그림 시간여행-⑧)
2024-01-15 06:00:00 2024-01-22 20:37:45
북극 아래에 위치한 페노스칸디아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핀란드, 러시아의 콜라반도와 카렐리아 지역을 가리킵니다. 세계 곳곳에서 선사 인류의 바위그림이 발견된 것처럼, 이곳에도 수천 년 전 신석기인들이 남긴 바위그림이 있습니다. 그들은 물가의 돌에 무엇을, 왜, 새겼을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질문을 품은 채 떠난 여정, 러시아 카렐리야의 오네가호수와 비그강, 콜라반도의 카노제로호수에 새겨진 바위그림과 노르웨이 알타 암각화를 향해 가는 시간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오네가호수와 백해 암각화 근처 도시들의 위치. 푸도시 -> 페트로자보츠크 -> 벨로모르스크로 이동. 사진=박성현
 
백해 옆 도시 벨로모르스크로 가는 길
 
암각화 여정의 첫 번째 방문지인 오네가호수를 떠나는 날이다. 새벽 6시 전에 일어나 텐트를 철거하고 배낭을 꾸렸다. 일찍 출발하느라 아침식사는 물론 생략했는데 안톤 선장이 보온병에 차를 챙겨와 배에서 건네준다. 모두가 잠든 아침, 다시 그의 모터보트를 타고 초르나야 레치카를 따라 카르셰보로 돌아가는 중이다. 카르셰보에서 푸도시로, 푸도시에서 페트로자보츠크로, 여기 올 때의 길을 그대로 되돌아나가야 한다. 이곳으로 오던 날은 날씨가 맑아 강물이 투명하게 빛나고 어우러진 초목과 하늘도 눈이 시리게 푸르렀는데, 나가는 길엔 먹구름이 잔뜩 끼어 그 찬란함이 덜하다. 
 
오네가호수 야영장에서 카르셰보 마을로 되돌아나가는 길인 초르나야 레치카('검은 작은 강') 사진=박성현
 
30여 분을 달려 카르셰보 마을에 도착하니 거의 7시다. “곧 택시가 올 겁니다.” 안톤 선장이 나를 내려 주고 떠나며 말했다. 감사 인사를 하고 택시를 기다리는데 차가 오지 않는다. 푸도시에서 7시 반 버스를 타려면 서둘러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오네가호수의 야영장에서는 전화 통화가 불가능하다. 통신사 한 곳만 된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 통신사도 거의 통화가 되지 않는다. 카르셰보에서 푸도시로 가는 택시를 미리 예약할 수 없어 걱정하는 나에게 안톤 선장 부부는 배가 출발한 후 통화 가능 지역으로 들어섰을 때 택시를 부르면 된다고 예사로이 말했다. 결국 그렇게 택시를 불렀지만 차가 오지 않는 것이다. 
 
카르셰보 마을에 필자를 내려주고 초르나야 레치카('검은 작은 강')을 따라 오네가호수 야영장으로 돌아가는 안톤선장의 배. 사진=박성현
 
사실 택시라기보다는 마을 주민들이 부업으로 하는 일인지라, 자다가 깨서 전화를 받고 나오는 사정을 고려하면 아침 일찍 갑자기 연락했는데 나와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미안한 상황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안톤 선장이 알려 준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니 차 주인은 카르셰보 마을 주민이 아니라 푸도시 쪽 주민으로 멀리서 오는 중이었다. 이른 아침의 노고와 주행거리에 비해 차비를 비싸게 부르지도 않는다! 전체 여정 동안 이런 식으로 부업용 택시를 탄 적이 몇 번 있는데 매번 합리적인 가격만 제시해 과거의 혼란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솔직히 조금 놀랍기도 했다. 참고로, 대도시라면 잘 알려진 러시아의 택시 앱을 사용할 수 있지만 중소도시라면 앱을 쓸 수 없고 대중교통 차량도 적거나 빨리 끊기기 때문에 그 지역에서 잘 사용되는 택시 업체(부업을 하는 일반 차들을 연결해 준다) 이름을 현지 주민에게 물어보거나 길거리에 ‘택시’라 쓰인 광고판의 번호(그런 업체의 번호)를 적어뒀다가 활용하는 것이 좋다. 이후 일정에서 경험을 통해 배운 사실이다.
 
매점이 없는 기차역
 
버스를 놓치기 일보 직전이라 조바심이 났다. 일정이 꼬일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생각하다가 마침내 푸도시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는데, 버스 출발 시각인 7시 30분에서 이미 몇 분이 지나 있다. 거의 포기 상태로 요행을 바라면서 버스를 찾아보니 다행히도 버스가 아직 출발하지 않은 게 아닌가! 작은 도시라 그런지 버스는 정시에 출발하지 않았고 주위에는 사람들이 어수선하게 모여 있었다. 승객을 다 태운 버스는 내가 도착한 몇 분 후에 떠나 출발이 10분가량 늦어졌고 페트로자보츠크에도 예정된 시각인 오후 1시보다 그 정도 늦게 도착했다.
 
푸도시에서 페트로자보츠크로 가는 버스가 승객들의 흡연과 휴식을 위해 시골길 정류장에 잠시 정차하고 있다. 사진=박성현
 
페트로자보츠크에서 벨로모르스크로 가는 버스는 2시에 출발하기 때문에 나는 요기를 하러 기차역 안에 들어갔다. 이곳에 처음 도착했던 날은 기차역 실내를 통과하지 않고 플랫폼에서 곧바로 거리로 나오느라 건물 내부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기차역 안에 매점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역이 작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페트로자보츠크가 그래도 카렐리야 공화국의 수도인데 간이판매대가 전혀 없다니. 예전에는 역 안팎에 키오스크라 불리는 가판대가 있었고(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에 확산된 무인 정보 단말기 판매 방식인 키오스크의 어원이 여기서 왔다), 큰 역에는 밤새 기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하룻밤 자고 갈 수 있는 휴게실도 있었는데… 역 안이 언젠가부터 황량해졌다. 
 
푸도시에서 페트로자보츠크로 가는 도중 버스의 차창 밖으로 만나는 풍경. 사진=박성현
 
모스크바의 여러 기차역은 더욱 화려해지고 매장들로 북적거리지만 지방 도시의 기차역 구내에는 간이매점도 안 보인다. 러시아 친구 말이 테러 때문이라고 하는데, 사실 테러는 모스크바에서 많이 벌어졌기 때문에 의아한 일이다. 2002년 모스크바의 오페라극장에서 발생한 인질극이나 2010년 모스크바 지하철 폭탄 테러처럼 2,000년대의 여러 테러 사건들은 주로 모스크바에서 일어났는데, 그 모스크바의 번화한 기차역에는 매점이 많이 있으니 작은 도시의 기차역에 매점이 없는 것은 단지 수익성이 없어서일 수 있겠다. 어쨌든 테러 사건들 이후 예전엔 자유롭게 들락거리던 기차역에 검색대가 생기고 지하철역에서도 보안요원이 요구하면 검색을 당해야 하니 변화된 상황에 익숙해지면서도 착잡한 심정이 드는 게 사실이다.
 
장화 소동과 벨로모르스크의 친절
 
이후에도 소도시 기차역 안에는 자판기 한둘 정도 외에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짐 보관소는 있다. 페트로자보츠크역의 짐 보관소는 역사 바깥의 별도 건물에 있는데, 처음 이곳에 도착해 박물관을 둘러보는 동안 잘 활용했었다. 나중에 솔로베츠키 제도로 가기 위해 들렀던 소도시 켐의 기차역에서도 환경미화직원이 짐 보관소가 있다고 말해 주었다. 다만 벨로모르스크 박물관 직원이 말한 것처럼, 예전에는 모두 작동되던 짐 보관소가 현재도 운영되는지는 역마다 확인할 필요가 있다. 거리의 카페테리아에 들어가 뭔가를 먹기에는 버스 시간이 촉박해 나는 기차역을 느긋하게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다시 벨로모르스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승차권은 기차역 한쪽에 붙어 있는 버스표 판매 창구에서 살 수도 있지만 소형버스인 데다가 여름철에는 당일 좌석이 매진될 수 있으니 예매를 하는 편이 안전하다. 
 
푸도시와 페트로자보츠크의 중간 지점인 메드베지예고르스크의 버스터미널(좌)에서 버스가 쉬어간다. 옆에 보이는 것은 카페(우). 사진=박성현
 
오후 2시에 출발한 버스는 저녁 7시 45분 벨로모르스크에 도착했다. 이 도시의 외곽에는 오네가호수의 바위그림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돼 있는 백해의 암각화, 정확히는 백해로 합류하는 비그강 하구의 암각화가 있다. 버스의 종착지는 벨로모르스크 기차역이지만 도시 안으로 들어서자 버스는 승객들이 요청하는 장소에 그들을 하나둘씩 내려준다. 덕분에 나도 숙소인 호스텔 근처에 내려 편하게 올 수 있었는데 방에서 짐을 풀다 보니 아뿔싸, 장화를 버스에 놓고 내린 게 아닌가! 머리 위 선반에 얹어 둔 걸 잊은 것이다. 오네가호수에서도 잘 사용했지만 무엇보다도 세 번째 암각화 방문지인 ‘카노제로 암각화’ 보호구역박물관 측에서 늪지대가 있으니 꼭 가져오라고 했던 필수품이다. 모스크바에서 사러 다닐 시간이 없을 것 같아 한국에서 작업용 고무장화를 온라인으로 주문해 내내 가지고 다니던 것인데 난감했다. 다음날 아침 백해 암각화 근처로 가 다시 텐트를 치고 일정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다. 
 
새벽 2시에 장화를 찾으러 가기 위해 전날 저녁 8시 20분경 벨로모르스크 기차역(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을 미리 답사했다.사진=박성현
 
호스텔 주인이 도와주려고 버스회사에 전화로 사정을 설명해 운전기사의 번호를 알아냈지만 계속 통화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틀린 번호가 전달된 것이었다. 그녀가 최후의 방안을 제시한다. “버스는 새벽 2시 반에 다시 페트로자보츠크로 돌아갈 거예요. 기차역 뒤쪽에 있는 노란 건물 앞에서 출발해요. 그 시간에 맞춰 가보세요.” 길치인 나는 불안한 마음에 기차역과 버스가 서는 곳을 먼저 답사하러 나섰다. 다행히 숙소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기차역으로 가는 길을 물어보는데 친절하게도 기차역까지 안내해 준다. 동네 주민인 스베따 씨다. 그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길을 확인하고 돌아오니 저녁 9시가 다 되어간다. 몇 시간 눈을 붙이고 새벽 2시까지 기차역 뒤 버스 출발장소로 가야지 하는데, 스베따 씨가 자신의 장화를 들고 호스텔로 찾아온 게 아닌가! “버스에서 장화를 발견하지 못하면 이걸 가져가세요. 남는 거니 안 돌려주셔도 돼요.” 게다가 그녀는 요깃거리를 하라고 과자와 초콜릿까지 가져왔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진심어린 친절을 베풀다니! 이후 벨로모르스크에서 이어질 친절한 도움의 시작이었다. 나는 감동어린 마음을 안고 새벽 2시에도 훤한 백야의 기차역에 다다랐다.
 
새벽 2시에도 훤한 백야의 도시 벨로모로스크의 기차역에 동터오는 모습. 사진=박성현
 
박성현 경상국립대 학술연구교수 [email protected]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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