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돌입한 이재용…사법리스크 털어낼까
이 회장 7개월 만에 다시 법정에 서…항소심 시작 질문에 '묵묵부답'
검찰 증거물 '증거 능력' 갖는지가 쟁점…검찰 항소 뒤집기 어려울듯
2024-09-30 17:13:48 2024-09-30 17:34:39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부당 개입한 의혹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전·현직 임직원들의 항소심 첫 공판이 30일 열렸습니다.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지 7개월여 만입니다. 재계에선 이 회장의 장기화하는 사법리스크를 두고 삼성과 국내 산업계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1심에서 전부 무죄가 나왔음에도 검찰이 기계적인 항소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고법 형사13부(백강진·김선희·이인수 부장판사)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 대한 항소심 1차 공판기일을 진행했습니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 5월과 7월, 두 차례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했는데 공판기일은 공판준비기일과 달리 피고인의 출석 의무가 있어 이 회장은 이날 법원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0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 관련 2심 1회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사진=임유진 기자)
 
이날 오후 1시40분경 법원에 도착한 이 회장은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습니다. 항소심 재판이 시작한 데 대한 소감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법정으로 향했습니다.
 
법정에 들어선 이 회장은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 착석했으며, 긴장한 듯 물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재판부가 '피고인 이재용'을 호명하자, 이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습니다. 이 회장은 때때로 허공을 쳐다보기도 했지만, 재판 내내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재판 내용을 경청했습니다.
 
이날 재판의 쟁점은 이 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경영권 승계'를 위해 추진했는지 여부와 검찰이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증거물이 '증거 능력'을 갖는지 등으로 모아졌습니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2144개의 추가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삼성 측 변호인 측은 이 증거에 동의하지만 상당수가 위법수집증거라는 입장을 재판부에 냈습니다. 이에 따라 2심도 증거의 효력 유무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검찰 주장이 1심의 공소제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지적입니다. 법조계에서도 검찰의 뒤집기가 쉽지 않을 것도 보고 있습니다. 1심에서 검찰이 3000여개의 증거를 제시했으나, 전부 무죄로 결론 난 만큼, 새롭게 확보한 증거들이 오염된 증거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입니다.
 
기업 소송을 주로 맡는 한 변호사는 "검찰이 피의자 한명당 150페이지, 총 20만페이지의 자료를 냈음에도 1심 법원이 전부 무죄라고 판단했다. 여러개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안인데도 통무죄가 나온 경우는 흔치 않다"며 "검찰이 당초 기소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부담돼 무리하게 항소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고 했습니다. 
 
검찰은 2019년 삼성바이오로직스·에피스 서버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자료,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의 휴대전화에서 추출한 문자메시지 등이 위법하게 수집됐다는 이유로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은 것도 항소심에서 다시 판단해달라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앞서 이 회장은 지난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최소비용으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미래전략실이 추진한 각종 부정 거래와 시세 조종, 회계 부정 등에 관여한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됐습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2015년 5월 이사회를 거쳐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약 3주를 바꾸는 조건으로 합병을 결의했습니다.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던 이 회장(당시 부회장)은 합병 이후 지주회사 격인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그룹 지배력을 강화했습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제일모직 주가는 띄우고 삼성물산 주가는 낮추기 위해 그룹 참모 조직인 미전실 주도로 거짓 정보 유포, 중요 정보 은폐, 허위 호재 공표, 주요 주주 매수, 국민연금 의결권 확보를 위한 불법 로비, 자사주 집중 매입을 통한 시세조종 등 각종 부정 거래가 이뤄졌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결과 삼성물산은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 공소사실입니다. 검찰은 삼성물산 이사들을 배임 행위의 주체로, 이 회장을 지시 또는 공모자로 지목됐습니다.
 
검찰은 이러한 과정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프로젝트 G'라는 승계 계획안에 따라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1심은 기소 3년 5개월 만인 지난 2월 5일 이 회장이 받은 19개 혐의 전부를 무죄판결했습니다. 판결문 분량만 A4 용지 1600여쪽에 이르렀습니다.
 
이번 항소심 재판은 신속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두 차례 공판준비기일을 연 항소심 재판부는 오는 11월 25일 변론을 종결하겠다는 예고했습니다. 다만 2심 선고 이후 상고심까지 갈 경우, 최종 판단까지 적어도 2~3년이 더 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재계 안팎에선 이 회장의 항소심 재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또다시 사법리스크에 발목이 잡힐 것으로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 회장은 앞서 1심 재판 기간에도 일주일에 1∼2차례 재판에 출석하느라 재판이 없는 명절 등을 이용해 해외 출장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오는 11월까지 항소심이 종결되더라도 2주에 한번씩 출석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경영 활동 제약이 당분간 이어질 전망입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검찰의 주장이 새로울 게 없다. 이미 1심에서 결론 난 내용을 2심에서 뒤집기를 어려울 듯하다"며 "그럼에도 검찰이 무작정적인 항소 관행으로 기업 경영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어 "일반인들은 재판을 한번만 받아도 고통에 시달리는데, 수년간 사법족쇄에 묶인 기업들인은 개인적으로도, 경영인으로서도 활동에 타격이 더욱 클 것"이라고 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email protected]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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